장애인복지정책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부모 및 보호자를 위한 지원도 포함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장애아동 부모를 위한 지원 시스템이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필자는 이번 연재 칼럼(총 3부)에서 ‘쉼‘에 초점을 둔 독일의 ‘부모-자녀 요양제도‘를 중심으로, 장애아동 부모의 '쉼'에 대한 당위성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독일에는 장애자녀의 고된 육아와 돌봄, 번아웃 등으로 심신이 지친 엄마 아빠에게 3주간의 요양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다. 이는 어머니-자녀 요양(Mutter-Kind-Kur), 아버지-자녀 요양(Vater-Kind-Kur) 또는 부모-자녀 요양(Eltern-Kind-Kur)이라고 불린다. 본 글에서는 이를 통틀어 '부모-자녀 요양'이라고 하겠다.
'부모-자녀 요양'은 부모 한쪽 또는 부모 모두 참여 가능하고, 혼자 또는 자녀를 동반할 수 있는 요양이다. 독일에 '부모-자녀 요양' 제도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며, 이 제도는 어떻게 실행되고 있을까?
전쟁이 남긴 고통... 이제는 어머니들이 회복할 때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전쟁은 독일 국민들에게도 커다란 충격과 고통을 남겼다. 1950년 당시 독일 대통령 부인이었던 엘리 호이스 크납(Elly Heuss-Knapp)은 전쟁 피해로 고통받는 어머니들에게 요양을 제공하고자 ‘어머니회복기구(Muttergenesungswerk, 이하 MGW)‘라는 재단을 설립했다. MGW는 대대적으로 후원금을 모집하고 주요 사회복지단체들과 연맹을 결성하며 요양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당시 우선지원대상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 중독자 남편을 둔 여성 그리고 장애자녀를 둔 어머니들이었다.
어머니 요양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MGW의 활발한 정치적 노력 결과, 어머니 요양에 대한 여러 법적 근거도 차츰 마련되었다. 어머니 요양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자녀 동반이 가능한 요양에 대한 요구도 갈수록 커졌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어머니 요양 비용은 MGW가 모집한 후원금으로만 충당되었다.
MGW의 꾸준한 정치적 노력 결과, 1989년 어머니 요양이 공적 의료보험 적용을 받게 되었고, 2002년 공보험은 '부모-자녀 요양' 비용을 전액 부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 '부모-자녀 요양'은 공보험의 '의무서비스'로 채택되었다. 쉽게 말해, 공보험은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처방을 받은 부모에게 '부모-자녀 요양'을 제공할 의무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독일 최초의 영부인이 설립한 MGW는 '부모-자녀 요양'이 탄생하고 발전하는데 일등공신을 했다. 이후 독일 영부인들은 MGW 홍보대사를 역임하는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부모-자녀 요양'이 지속적으로 사회적ㆍ정치적 관심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 MGW에는 독일 내 70개 이상의 요양전문클리닉이 소속되어 있고, 독일 전역에 1천 개소 이상의 MGW 산하 상담시설이 있다.
'부모-자녀 요양'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MGW에 따르면 2022년 기준 73곳 요양전문클리닉에서 총 44,525명의 어머니와 총 2,320명의 아버지들이 부모-자녀 요양을 받았고 총 61,041명의 아이들이 동참했다.
'쉼'이 필요한 부모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요양
'부모-자녀 요양'은 예방 및 재활 조치에 속한다. '쉼' 그리고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예방 및 재활 조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사회법전 제5권 제24조, 제41조). 부모는 의사 처방전을 가지고 의료보험사에 '부모-자녀 요양'을 신청하면 된다.
통상적으로 보험사들은 요양 신청서의 90퍼센트 정도를 승인한다. 승인 거부 시 신청자는 4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때 MGW 산하 지역상담소가 이의신청과정을 적극 도와준다. MGW에 따르면 지역상담소를 통해 이의신청을 하면(상담비용은 무료이다) 대부분 요양 승인을 받는다고 한다. 의료적 관점에서 '쉼'이 필요한 부모라면 누구나 '부모-자녀 요양'에 참여 가능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부모-자녀 요양'은 4년 마다 재신청이 가능하다. 장애자녀의 부모는 2년마다 요양 재신청을 할 수 있다.
'부모-자녀 요양'은 엄마 또는 아빠, 경우에 따라서는 엄마 아빠 모두 참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엄마지만, 아빠 참여율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독일 건강보험공단(AOK)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요양 참가자의 약 14퍼센트가 아빠들이었다.
휴가 같지만 휴가 아닌 요양
'부모-자녀 요양'은 자연 속 휴양지에 위치한 요양전문클리닉에서 실시된다. 휴가 같지만 결코 휴가가 아닌 요양이다. 부모는 휴가처럼 충분히 쉴 수는 있되,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 일과를 보낸다.
다방면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요양클리닉은 부모의 심신 문제뿐만 아니라 자녀양육 문제, 라이프 스타일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부모는 의료 진단 및 치료, 물리치료, 운동, 요가, 마사지, 심리상담, 영양상담, 부모-자녀 상호작용 개선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공식 프로그램이 없는 시간에는 혼자서 또는 다른 부모들과 소통하며 자연 속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부모는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한 치료를 받고,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한 휴식을 갖고,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한 활동을 함으로써, 인생을 재정립하는 기회를 갖는다.
돈이 (거의) 안 드는 요양, 임금이 지급되는 요양
'부모-자녀 요양'은 보험 적용이 되지만 하루 10유로의 자기 부담금이 발생한다. 그러나 동반된 자녀는 전액 무료이다. 경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의료보험사나 MGW가 모금한 후원금을 통해 자기 부담금 납부를 면할 수 있다.
'부모-자녀 요양'은 일하는 부모에게도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업주는 임금계속지급법(Entgeltfortzahlungsgesetz)에 따라 요양 중인 근로자에게 임금을 계속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선 글<장애아동 부모의 쉼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에서도 언급했듯, 독일 사회에서 '쉼' 그리고 요양은 인권 차원에서 이해되고 수용되기 때문에 근로자는 요양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고 사업주는 요양에 참가하는 근로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녀 동반은 필수 아닌 선택 사항
엄마 아빠는 혼자 요양을 할 수도 있고, 자녀를 동반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동반 자녀 연령은 일반적으로 3세부터 12세까지로 제한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 14세까지도 가능하다. 장애가 있는 자녀의 경우 연령 제한이 없다.
부모-자녀 요양클리닉에는 이른바 '병원학교'가 있다. 아동은 병원학교 자체 교육과정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학교에서 받아온 숙제나 과제를 바탕으로 학교교육을 받기 때문에, 요양 기간의 결석은 출석으로 인정된다. 학령기 이전 아동이나 유아는 요양클리닉 소속 어린이집에서 전문 돌봄을 받는다.
부모-자녀 요양의 주인공은 부모
'부모-자녀 요양'의 주인공은 부모이다. 자녀를 동반하더라도 요양의 초점은 전적으로 엄마 아빠에게 맞춰져 있다. 엄마 아빠가 온전히 휴식과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인력은 자녀 돌봄과 교육 서비스를 담당한다.
장애가 있는 자녀는 돌봄 및 교육 서비스 외에도 필요한 치료나 재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70개가 넘는 '부모-자녀 요양' 전문클리닉 중 장애아동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는 클리닉은 아직 10군데 정도 밖에 안 된다. 물론 장애아동요양을 전문으로 하는 클리닉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현재 독일에는 부모가 동반한 장애자녀 역시 전문치료 및 재활을 받을 수 있는 부모-자녀요양 전문클리닉 수를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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