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는 신체활동, 가사활동, 사회참여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신체활동을 일상생활이라고도 하고, 가사활동은 수단적 일상생활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사회참여활동을 외출하기라고도 한다. 가사활동을 수단적 일상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세탁기, 청소기, 조리도구 등 수단을 이용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것이다. 가사도우미와 활동지원사의 차이는 동일하게 가사활동을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편하고자 하는 종속적 고용관계인 가사도우미 이용과 신체적 제약으로 인한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한 동등한 관계에서의 서비스 제공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어느 날 한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를 만났다. 그분은 매우 상기된 얼굴로 흥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적극적 성격이라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분 같았다. 나는 이런 분을 만나면 어느 정도 긴장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아들이 중증 척수장애인인데, 서울시 공무원으로 선발돼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데, 낮에는 직장에 있게 되고, 주말이나 되어야 낮에 집에 있게 된다고 했다.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을 월 400시간 인정받았고, 야간에 서비스를 받고 싶지만 활동지원사를 구할 수가 없어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활동지원사들도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있기를 원하기도 하고, 주로 활동지원사 활동을 하는 분들이 주부들이 많아 저녁에는 가정으로 돌아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 400시간 중 주말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불과 100시간도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공격하듯이 긴장을 시켜 가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장시간 이야기를 들으며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는 잘 정리되어 요약하기가 쉽지 않다. 조용히 들으면서 내 스스로 정리한 다음, 요구하는 말이 내가 생각한 것과 일치하는지 질문하여 확인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어머니는 왜 활동지원사가 장애인과 같이 있으면서 서비스를 해야만 하는가를 말하고 있었다.
활동지원사가 장애인과 함께 있지 않으면 부정행위로 간주한다. 같이 있지도 않으면서 서비스를 한 것으로 거짓으로 정부에 돈을 탄 것으로 여긴다. 세수나 옷입기 등 서비스에 장애인과 함께 있지 않으면서 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이니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동석 서비스라고도 하고, 공존 서비스라고도 한다.
만약에 시각장애인이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갈 때 굳이 활동지원사와 동행을 할 필요는 없다. 활동지원사만 고생하면 될 일을 둘 다 고생해서 가게로 갈 필요는 없다. 마침 이런 때에 경찰서에서 활동지원사에게 전화가 온다.
경찰: 지금 활동지원 서비스를 하고 계시지요
활동지원사: 네
경찰: 지금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컴퓨터에 나타나니 당연하겠지요. 그럼 옆에 있는 시각장애인을 좀 바꾸어 주십시오.
이때 현명한 대답을 해야 한다. 단순히 지금 옆에 없다고 하고 전화를 끊으면 부정행위자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 경찰서란 말만 들어도 긴장이 되고 무슨 죄를 지은 듯이 기가 죽는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겁이 난다.
이런 때에는 침착하게 지금 잠깐 심부름으로 편의점에 왔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금방 집으로 가서 장애인을 바꾸어 드릴 수 있다고 해야 한다. 제가 심부름을 잠깐 나온 것인지 장애인 당사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확인해 보아도 좋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어머니의 주장은 왜 동석이나 동행을 반드시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왕 장애인을 돕는 일을 하는데, 장애인이 외출을 한 시간에 집에 와서 가사일을 해 놓고 갈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렁각시처럼 저녁을 차려 놓고 가면 장애인이 퇴근하여 집에 오자마자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그 주장은 좀 문제가 있다고 했다. 활동지원 서비스는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것이지, 가사도우미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장애인이 함께 집에 있는 시간에 요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화가 나서 왜 그래야 하느냐고 따졌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퇴근하여 식사 준비를 하면 퇴근하여 바로 식사를 어차피 하지는 않지 않느냐고 말했다. 서비스는 동등하게 해 주는 것이지 더 해주는 것은 아니리고 했다.
만약에 장애인이 비장애인이었다 하더라도 퇴근하면 그때부터 식사 준비를 할 것이고, 그러면 식사 준비가 다 된 후에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이라고 하여 식사 준비를 하기 어려운 신체적 조건이 있지만, 식사를 즉시 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장애인이기에 필요한 서비스 즉, 가사활동 서비스를 받아 좀 늦게 식사를 한다고 하여도 비장애인과 같은 동등한 활동을 하는 것이니 빈집에 활동지원사가 혼자 가서 미리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과한 서비스가 아니겠느냐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빈집에 외부인 출입을 싫어하는 이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400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하다고 판정을 해서 통보를 해 놓고 400시간을 다 쓸 수 없으니 억울하다고 상기되어 말했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활동지원사가 도와줄 수 없으니 야간에 필요한 서비스를 충분히 받으면 되는 것이지, 활동지원사의 서비스권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집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서비스를 사용할 조건이 되지 못하여 못 쓴 것을 너무 억울해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러면 2년 후에 활동지원 서비스를 장기간 이용하지 않아 권리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화를 냈다.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을 서비스권리를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나는 고민이 되었다.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 안도감이 들 것이고, 주어진 권리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쉽고 억울할 수도 있다.
나는 그래도 활동지원사가 장애인과 함께 있어야 하는 원칙을 만든 취지를 옹호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이 난무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저녁을 늦게 먹는 것이 억울한 것이 아니다. 퇴근 후 저녁을 해야 하는 시간은 활동지원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으로 일해줄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장애인이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을 많이 가지고 마치 군림하듯이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낮시간에 빈집에 가서 밥을 해 달라는 것이 서비스를 이용하여 대단한 것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다.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부정을 할 수도 있는 예비 범죄자로 감시 대상이 되고 있다. 아무리 의심을 받아도 떳떳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심리적으로 자립생활을 도전하는 장애인에게는 너무나 수치감을 주는 제도일 수 있다.
그리고 밥을 일찍 퇴근하자마자 먹고 싶어서,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을 다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까워서 소진하고 싶어서, 동석을 하지 않아도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활동지원사의 주요 활동시간대가 문제인 것이다. 활동지원사를 특정 시간에는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중개 기관 코디네이터와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 중 가사활동에 해당하는 시간은 동석의 조건을 완화하여 하루 몇 시간은 반드시 장애인과 함께 있어야만 하는 서비스 조건을 유예하면 좋겠다. 그러면 부정을 색출하기 어려워서 곤란하다고 정부 측이 말할 수도 있지만, 사전에 미리 정기적 가사활동 낮 시간대 동석하지 않는 서비스를 사전 신고제로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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