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동 위해 옹호말고 아이와 함께 옹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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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21.08.10 조회5,613회 댓글0건본문
“Don’t forget that your child is capable to advocate. Too often I hear saying I have to advocate for my child. No, you have to advocate with your child. Your child has also advocacy skills and they need to develop those skills for their lifetime. So, talk to your child and ask them and encourage them in expressing their experiences as well.”(아이들도 스스로를 옹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내 아이를 위해 옹호해야만 해요, 란 부모들의 말을 종종 듣는다. 그렇지 않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옹호해야 한다. 당신의 자녀 또한 옹호 기술이 있고 평생 동안 이 기술들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니 당신의 아이와 대화하고 질문하고 그들이 경험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Dr. Jac den Houting
‘만약 지금도 한국에 살고 있다면?’
가정을 해 보는 일처럼 득 없는 일이 있을까 싶지만, 가끔 드는 생각이다. 어디에 살던 지금처럼 ‘자폐성 장애’에 대해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는 엄마란 사실엔 변함이 없을 듯하다. 반면에 한국에 살았다면 아들에게 ‘자폐인’이란 진단명을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고, 설령 진단을 받았어도 꽁꽁 비밀로 숨기느라 바빴을지도 모른다. 가장 장담할 수 없는 지점은 지금처럼 자부심을 담아 키우거나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있을 자신은 없다. 호주에 살아서, 좀 더 일찍 그리고 수월하게 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경계의 영역을 넓히고 분리를 낮추는 교육 필요”
전직 교사였기에 한국 학교의 생리를 잘 안다. 벤이 한국에 살았다면 평생을 자폐인도 비자폐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사는 방법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진단명을 주지 않으면 수시로 벤에게 적합한 지원과 이해를 ‘구걸’하는 징징대는 엄마로 오해받으며 일반학급에서 환영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반면에 진단명을 학교에 준다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수 교육 대상자’이니 너무나 당연하게 특수학급에 보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애 아동=특수교사=통합교육’이 공식처럼 굳어진 한국에서는 벤처럼 기능이 좋아 ‘장애인 같아 보이지 않는’, 그러나 여전히 자폐인 아이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단적으로 말하면 내 아이에게 필요한 개인별 지원과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벤은 비자폐 아동들에 비해서 특별히 손이 많이 가지도 않고 학업성취도 높은 아이에요. 우리 학급에는 벤보다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비장애 아동들이 여럿 있어요.”
굳이 벤의 담임 교사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많은 자폐 아동들은 일반교실에서 교사들이 자폐(인)에 대해 조금의 인식과 이해만 있어도 얼마든지 이들을 지원하고 교육할 수 있다. 특히 호주처럼 “통합교육=모든 아이들의 권리=모든 교사의 책무”란 공식이 상대적으로 깊게 정착해 있는 곳에서 장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합교육은 장애 아동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사실을 실감한다.
나는 호주의 교육시스템을 경험하며 마침내 일반 교육과 통합 교육이 기차의 철로처럼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게 아님을 인식했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학생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수준에 맞춰 진행하고자 애쓰는 교육과정, 즉 ‘수요자 중심,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아동 교육과 비장애아동 교육은 인간을 길러낸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해했다.
무슨 말이냐면, 일반 교육에서 중시되는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벤에게 좀 더 정교하고 세밀하게 적용하면 장애 아동들에게 필수인 ‘개인별 교육계획(IEP, Individual Education Plan)’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한 학생의 발전과 성장을 중심에 놓고 이루어지는 교육은 장애 여부에 무관하게 교육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IEP는 장애 아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IEP(Individual Education Plan, 개인별 교육 계획)는 한국에도 있고 호주에도 있다. 하지만 호주에서 말하는 IEP는 특수교육 대상자 외에도 부가적인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아동의 전인적인 성장과 발달을 의미하는 훨씬 광범위한 개념을 뜻한다. 교육 현장에서 지원과 도움은 장애 진단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아이들에게 필요한 권리라는 인식이 있을 때만 안전망 밑으로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최대한 붙잡고 구조할 수 있다.
호주에서 IEP를 이해하려면 먼저 ‘학생지원 모임(SSG, Student Support Group)’을 이해해야 한다. 호주의 교육법에서는 장애아동 여부를 떠나 부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학생은 누구나 학생지원 모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령, 갓 이민을 와서 영어 사용이 어려워 학습을 따라갈 수 없다거나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도 학생지원 모임을 요구할 수 있고, 어떤 이유로든 장애 진단을 받지 못했으나 부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 부모가 학생지원 모임을 요구할 수 있다. 즉 다양한 이유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기초학력이 낮아서 부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아동이라면 누구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호주에서 IEP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학생지원 모임에서 해당 아동을 전방위적으로 이해하고 지원하기 위해 논의된 다양한 의견들, 가령 아동의 강점과 장점, 흥미와 관심사, 가족 구성원과 환경에 대한 이해, 지원방법과 제공할 서비스 등을 논의하고 이를 정리하여 문서화 하는 작업이 IEP이다. IEP는 매 번 새로 쓰이는 지도다. 호주 교육법에서 학생지원 모임은 대상 아동 당 연 4회 이상 실시되어야 하고, 아동의 성장과 어려움을 확인하며 계속해서 수정 보완해야 한다.
“학교 측과 학부모 측의 균형의 추를 맞추는 노력”
호주의 학생지원 모임에는 누가 참석할까? 기본적으로 학교 측에서는 교장 또는 교감 선생님 중 한 분과 담임 교사가 참여하는 게 원칙이다. 부모 측은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원 인력을 학교와 협의하여 결정한다. 그러니까 모임이 열릴 때마다, 부모의 요구에 따라, 아동의 현재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참석자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갓 장애를 진단받은 새내기 “장애 학부모”가 학생지원 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어떨까? 대부분은 아직 장애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학교의 시스템이나 특수교육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대로 의사도 표현 못하고 뭘 요구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학교 측이 요구하는 대로 “Yes”만 하다 돌아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명해야 하는 사람은 약자다. 아이의 처지와 어려움을 호소해야만 교육이 가능한 장애당사자나 부모들에게 학교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 말은 이들이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으려면 비탈진 운동장을 기어올라 협상의 테이블에 이르는 과정 또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이 주어져야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호주에서는 부모를 감정적으로나 전문적으로 지지할 사람을 동반할 권리가 법적으로 당연하게 보장된다.
예로 부모가 영어 사용이 자유롭지 않다면 통역사를 학교측이 제공해야 하고, 부모가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이해가 낮다면, 자폐성 장애 분야의 활동가를 동반할 수도 있다. 아동이 체육 시간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체육 교사를 회의에 참석시킬 수 있고, 외부에서 만나고 있는 감각 통합사(OT, Occupational Therapist) 나 상담사가 회의에 함께 참석해서 학부모 측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아동의 학교생활에 있어서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받는다는 뜻이다.
호주에서 자폐 아동을 키우면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나와 벤의 목소리가 학생지원 모임에서 들려지고 IEP에 최대한 담겨질 수 있는 시스템,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개인별 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맞춰 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까?
“제1원칙, 아동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라”
그렇다면 아동 당사자는 어떨까? 호주의 교육법에서는 당사자가 원하고 가능하다면, 당사자의 학생지원 모임 참여를 보장하여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본인의 권리를 행사하고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아직까지는 내가 벤이 들려 주는 토막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다 적어 교감이나 담임 교사 앞에서 읽어주고, 그 토막 이야기들에 숨겨진 벤의 속마음이나 어려움들을 설명해 주고 있지만, 나중엔 벤이 직접 본인의 목소리로 자폐 당사자의 관점에서 들려주길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친구들이 나에게 불필요한 도움을 주는 게 싫어요. 왜냐면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자폐인은 부족(less)한 게 아니라 다른(different) 거예요.”
“선생님이 과제를 말로만 길게 설명하면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을 칠판에 간단하게 순서대로 적어 주세요. 그러면 나도 잘 할 수 있어요.”
“저는 타인의 눈에 띄는 게 싫은데 다시 설명해 달라고 계속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건 기분이 나빠요. 저에게 가끔 조용히 다가와 물어 주세요. Is everything okay?”
“엄마가 나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잖아”
한 날 벤은 역정을 냈다. 자폐 아동과 살다 보면 엄마는 억울한 일 투성이다. 낯선 타인들로 부터만이 아니라, 정작 아들에게서도 서운한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고 괘씸해 보일 때가 있다. 가령 본인이 난처한 상황에 처할까봐 나름 열심히 옹호했는데, 막상 나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그렇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고 내 아이의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미궁을 헤매던 나를 구원한 것은 언제나처럼 다름 아닌 자폐 성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다.
“자폐 아동을 위해(for) 옹호하지 말라. 아이와 함께(with) 옹호하라”
자폐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호주 자폐 연구의 최전방에서 활발한 활동 중인 자폐 당사자인 Houting 박사의 강연을 듣고 마침내 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본인의 마음을 묻지 않고 엄마 맘대로 지레짐작으로 재단하고 판단했다는 점, 벤의 입장에서는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 다는 점, 나의 마음이 벤의 마음과 항상 같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가장 중요한 사실, 앞으로 벤과 살아갈 긴 여정에 꼭 필요한 지침 하나를 마음속에 추가했다.
“엄마는 곁에서 지지하고 지원할 수는 있어도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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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
출처: 에이블뉴스( 2021-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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