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 장애예술인 고정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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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20.09.21 조회5,197회 댓글0건본문
“아이들 주제로 드론 사용 새로운 작업 도전 계획”
올해 5월 문화가 있는 날 전시회(사단법인 빛된소리글로벌예술협회 주최)의 주인공 고정심 이름을 본 순간 ‘아, 그때 그 사람!’이라는 반가운 감탄이 흘러나왔다.
1993년 엄마 등에 업혀 38세의 나이에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에 수석 입학하여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62세가 되어 “동심”이란 주제로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 2층에서 5번째 개인전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고 화백은 ‘작품을 보시면서 어릴 적 추억을 느껴 보시고, 어려운 시대에 그림을 통해 힐링 하셨으면 좋겠다’고 전시회 개최 의미를 밝혔다.
38세에 대학생이 되고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고정심은 5세 때 감기인줄 알았던 열병으로 척추 손상으로 인한 척추장애에다 몸이 약해서 늘 아팠다. 여덟 살 때 그녀에게 취학통지서가 나왔지만, 학교를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집에서 홀로 지냈다.
외로운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버팀목은 그림이었다. 우연히 과일, 꽃 등을 그렸는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화가의 꿈은 먼 나라 얘기였다.
그런 그녀를 바깥세상으로 이끈 것은 둘째 여동생이었다. 그녀의 그림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고, 그녀를 업고 전시회를 다녔다. 그리고 여동생의 주선으로 1979년 창작미술협회 주최 공모전에 도전하였는데 입선을 하여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었다.
“공모전을 계기로 한국 화단에서 유명한 작가님을 찾아가 배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엄마에게 업혀 들어가는 저를 보고 ‘어떻게 그림을 그리러 다닐 수 있겠냐.’면서 거절을 하더라고요. 사사를 받을 수 없다면 미술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는 방법밖에 없더군요.”
그녀는 31세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고 결심할 때가 바로 막냇동생이 대학을 졸업하는 해였다. 다섯 남매의 맏이인 그녀는 동생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31세가 되던 해 5, 6학년 전과를 사 놓고 두 달 공부한 뒤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중학검정고시 공부를 할 때는 영어 과목이 어려워 손바닥에 영어단어를 쓴 쪽지를 쥐고 잤다. 자면서도 단어를 외울 요량이었다.
자신의 장애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체력장 점수 20점에서 16점이라도 받으려면 의사 진단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하는 등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의사는 척추 손상이라고 진단하며 인공 척추를 삽입하지 않으면 장기가 눌려서 호흡도 곤란해진다고 하였다.
당시 고정심의 상태는 기대지 않으면 앉아 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그래서 고정심은 수술을 받기로 하고 그 당시 지체장애인들이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여수 애양병원에 진료 신청을 하였다.
중학검정고시를 마치고 수술을 받았다. 전신 깁스를 한 상태로 1년 6개월 동안 누워서 지냈 는데 천장만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작은 밥상에 고무줄을 두르고 그 사이에 책을 꽂아 책받침대를 만들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배 위에 스케치북을 놓고 직접 볼 수가 없어서 손거울로 비춰 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노트 40권이 되었으니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녀의 창작열을 엿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미대입시 준비를 하기 위해 입시전문 미술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오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학원 근처에 방을 얻어, 엄마 등에 업혀 학원에 다녔다. 학원은 방과후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이 있었지만 고정심은 학원문을 여는 10시부터 갔다.
미대 시험은 실기가 중요한데 실기시험은 공통실기와 전공실기로 치러진다. 전공은 한국화를 선택하면 되었지만 공통실기는 어느 문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실기 공부가 필요했다.
게다가 고정심은 아침에 의자에 앉혀 놓으면 저녁때까지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어야 해서 석고 데생이나 정물을 여러 각도로 관찰하며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정심은 모든 각도를 다 공부하며 익혀야 했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하루 두 시간 정도만 자면서 치열하게 공부를 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38세가 되던 1993년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에 수석 입학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녀가 충남대에 입학원서를 내자 학교에서는 그녀를 신입생으로 받을 것인지에 대한 찬반 투표를 했을 정도로 중대 결정 사안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수석을 하는 바람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대학에 처음으로 입학한 장애학생이었죠. 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엘리베이터가 없었어 요. 신문지 두 장을 갖고, 계단에 하나씩 놓으며 기어 올라가서 치열하게 공부했죠. 그 결과 4 학년 총 8학기 전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 때까지 수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강의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하는 물리적인 장벽도 힘들었지만 장애 때문에 큰 작품을 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교수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도 그녀가 건너야 할 강이었다.
고정심은 100호 그림에 도전했다. 손이 닿는 부분까지 그리고 나서 위 아래를 바꾸어 놓고 거꾸로 그렸는데 그것은 마치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일을 하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뜻대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자 거꾸로 그리기가 자연스러워졌다.
그녀는 42세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 각종 매스컴의 세례를 받았다. 휠체어장애인 만학도로 충남대 예술대학 수석 입학을 했었는데 또다시 수석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입시 미술학원 원장이 되고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평촌에서 입시전문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입시 노하우를 알려 주고 싶었다. 고정심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가족들이 이산가족이 되었는데 남동생이 화성교육청에 근무하게 되어 오산에 모여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오산에서 평촌을 오가며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너무 피곤하여 오산으로 학원을 옮겨서 아동전문반을 운영하였다. 그즈음 그녀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술학원에 다닐 때 알게 된 남자의 끈질긴 청혼으로 1994년 결혼을 하였다.
지금 아들이 26세인데 군복무를 마치고 와서는 미술로 전공을 바꾸겠다고 하여 현재 편입학 준비를 하고 있다. 아들을 오랜 시간 동안 혼자 키워서 미안한 마음이 늘 있지만 성인이 된 아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봉사활동으로 재능을 나누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져서 고정심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누고 싶었다.
학원을 하면서 아이들이 없는 오전 시간에는 일주일에 사흘은 봉사활동을 나간다. 성심학교 봉사는 2,000년 초부터 시작해 17년 동안 지적장애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큰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그녀는 오산종합사회복지관 은빛사랑채에서도 공예미술을 가르치고, 오산남부종합사회복지관 은빛사랑채에 서는 미술치료 프로그램으로 치매 어르신들과 만난다.
치매 어르신들이라 금방 잊어버려 반복해서 가르쳐야 하는데, 어르신을 만나 봉사활동을 하며 인생을 배우고 있다.
평생 공부하며
고정심은 대학 졸업 후 공부를 하고 싶어서 2000년도에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과에 입학하여 미술교육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오산에서 서울 마포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오가며 공부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당시는 학원도 할 일이 많았고, 아이도 어렸기 때문에 대학원 공부까지 한다는 것이 힘에 겨워 논문학기에 잠시 쉬었던 것이 복학의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그 후에도 자기에게 필요한 자격증을 획득하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픽디자인 자격증까지 있을 정도로 그녀는 배움에 늘 열정적이다. 현재는 데이터를 코딩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코딩을 통한 새로운 작업에 도전할 계획이다.
“드론을 사용하는 새로운 작업에 도전해 보려고 해요. 작품 주제는 당연히 ‘아이들’이죠.”
고정심 화백
#주요경력
# 학력 1993년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수석 입학, 1997년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수석 졸업
# 수상 및 전시 경력 1979~2019년 창작미술협회 연 2회 입선 외 250여 회 전시, 1981년 아시아예술제 은상 수상, 세종문화회관 제1회 개인전 1994년 곰두리미술대전 특선 2002년 경기도장애극복상 수상, 2003년 과천 정부청사 보건복지부 대회의실 작품 기증 감사패 수상, 2006년 제16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2011년 제21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2013년 일본 하야시바라 국제예술제 2013 희망의 별 부엉이전 입상.
2014년 제2회 오산시립미술관 개인전, 2014년 제1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전 서울역사 및 2015년 제2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전 서울역사, 제1회 국제융합예술전 우수상, 제25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2016년 제3회 서초동 한우리정보문화센터 개인전, 제3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전, 제1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 장려상 수상, 2017년 제4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전, 2018년 제4회 한우리정보문화센터 개인전, 제5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전, 제28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2019년 제6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전, 2019~2020년 코리아 아트페스티벌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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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장애예술인협회 (klah1990@hanmail.net)
출처: 에이블뉴스( 2020-0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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