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에서 자폐인사랑협회 대표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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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19.12.12 조회5,431회 댓글0건본문
▲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대표.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장애자녀 유치원 보낼 때 받아주지 않는 ‘현실 실감’
자폐인 문제 이슈화…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 등 노력
. 사회 지도층이 장애인 자녀를 공개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대표님께서는 판사 시절부터 아들을 공개하였다. 아들 공개 후, 후회한 적은 없으신지.
저는 사회 지도층도 아니지만 첫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장애인 부모들과 똑같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재활치료와 사회통합 등을 계속 고민했다. 아이를 숨긴다든지 공개한다든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Q. 판사를 그만두신 이유가 사회 활동을 위해서였는가.
유치원을 보낼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사회에서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우리 아이가 갈 수 있는 유치원을 찾아 하월곡동까지 갔다. 생명의 전화에서 운영을 하였는데 어렵게 운영을 하고 있어서 후원금도 내고, 법률 상담도 해 주었다.
그런데 모두 익명으로 해야 했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부모가 없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설을 만들자고 하여 장애인 부모들이 큰돈을 갹출하여 사회복지법인 계명복지회를 설립하여 시설을 세울 계획을 세우고, 자폐아부모회를 조직하여 자폐아 문제를 고민하는가 하면 특수학교, 장애인단체와 시설 등 장애인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곳에서 부르면 후원회비도 내고 회의에도 참석하였다.
30여 군데 관여를 하다 보니 조직에 매여서는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대법관이 되는 것보다 변호사로 자유롭게 장애인복지에 힘을 보태는 것이 옳다는 판단으로 2001년 사직을 하였다.
Q. 한국자폐인사랑협회는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2005년 영화 <말아톤>이 우리 사회에 자폐인 문제를 이슈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자폐인을 위한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협회를 만들기로 하였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자폐인협회가 있었기 때문에 자료를 모으고 소아정신과, 특수교육, 사회복지 등 관련 전문가 등을 찾아다니며 힘을 보태줄 것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자폐인 가족 1천여 명이 모여 2박 3일 동안 사랑캠프를 개최하며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우리 부모들이 뜻을 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렸다. 캠프 예산은 SK행복나눔재단에서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사랑캠프에 참석한 장애인 부모들의 열망을 보고 협회의 필요성을 인정한 덕분에 2006년에 사단법인 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우리 단체는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직도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장애인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서로 의지하며 돕고 있다.
Q. 협회의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세계자폐인의 날 행사가 아닐까 한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2003년부터 15개 장애 범주에 자폐증이 포함되었다. 법적 용어는 정확히 자폐성장애이다. 중범위인 발달장애의 하위 범위로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가 있는데 자폐성발달장애인이라고 많이 사용한다. 4월 2일 세계자폐인의 날은 유엔이 정한 것인데 오티즘데이가 정해진 데는 미국 NBC 사장의 역할이 컸다. 그분도 자폐 자녀가 있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자폐아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자폐인의 날 사랑의 음악회를 하는데 자폐성장애인들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서 관객들이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Q. 제1회 오티즘엑스포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오티즘엑스포의 목적이 무엇이었고,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보는가.
지난 7월 12일부터 3일 동안 개최되었다. 사전 등록이 1만명, 방문객수 2만명, 정말 놀라운 반응에 우리가 더 놀랬다. 오티즘은 자폐증을 뜻한다. 자폐인의 날도 오티즘데이라고 한다. 오티즘엑스포는 축제로 예술적 재능이 있는 자폐성장애인들에게 무대를 마련해 주었고, 장애인 부모에게 다양한 정보를 주기 위해 100여 개의 유관 단체가 참여하여 사업 설명을 하였다. 아시아 최초라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고, 전국에서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참여한 젊은 자폐아 부모들이 많아서 그동안 얼마나 정보에 목말라 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은 예산이 민간기업, 그것도 자폐아부모인 서플러스글로벌 김정웅 대표의 후원으로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는 정부 지원으로 중장기 계획을 세워서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Q. 아들 범중 씨 나이가 30이 넘은 것으로 안다. 아들이 자립해서 살아가기 위한 계획은.
82년생이다. 37살이다. 굉장히 순한 성격이라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늘 안쓰럽다. 지금은 부모가 있어서 그저 아이처럼 보호를 받고 있지만 우리 부부가 이 세상에 없을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 아이를 위해 그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계획이 안정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범중이 아래로 동생이 2명 있다. 장애인 형제자매의 문제도 장애인 부모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무관심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아내는 소아재활의 학과 교수이다. 의료재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도 장애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래서 아내의 아픔이 더 컸다. 아내는 소아재활의학을 위해 헌신하는 적극적인 사람이다.
Q. 부모가 장애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모 사후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인데, 어떤 안정장치가 필요한가.
그 안정장치로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을 위해 자폐성 장애인 부모 가운데 법조계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 변호사 사무실에 모여서 작업을 하였다. 법 제정 작업은 우리 협회를 만들고 바로 시작하였는데 마침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이때가 기회다 싶어 각 정당 대통령 후보를 만나 각당 대통령선거 10대 공약에 넣을 만큼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막상 선거가 끝나자 공약은 무의미해졌다. 당시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1호 법안으로 발의는 했지만 법안 제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예산 규모가 가장 큰 문제였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원하는 제도를 모두 넣자 예산이 너무 커서 줄이고 줄이는 수정안들이 나와 2014년에 겨우 제정되었다.
Q. 협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발달장애인 문제는 주로 부모 사후가 문제이다. 그래서 성년후견인제도를 도입하였지만 이 역시 동상이몽이다.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돈을 다 빼앗아 가도 발달장애인의 재산으로 되어 있으면 국가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여 더욱 어려운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그래서 신탁관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협회에서 신탁재산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신탁관리위원회를 설치했다. 변호사가 유언장을 집행하듯이 변호사가 유언대용신탁을 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상주하며 상담을 하고 신탁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야 해서 이 위원회를 운영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협회는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아서 필요한 사업을 마음껏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장애 자녀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CST(Caregiver Skills Training)는 발달의심 아동에 대한 조기개입과 그들의 주양육자를 위하여 세계보건기구(WHO) 와 미국의 Autism Speaks가 공동 개발한 양육자기술훈련 프로그램 WHO-CST를 운영하고 있는데 바쁜 분들이 집체교육에 참여하는 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
*2001년 9월, 서울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김용직은 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법무법인 KCL은 밀착형 기업자문, 분쟁해결에 있어서 탁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KCL은 국내 중대형 로펌으로 성장하면서 세간에 화제가 된 사건들을 많이 맡아서 큰 성과를 이루었다. 법조언론인클럽 주최 ‘올해의 법조언론인·법조인상 시상식’에서 2016년 법조인상은 사단 법인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설립을 주도하는 등 사회소외계층을 위해 지난 20여 년 간 헌신해 왔으며 특히 ‘발달장애인지원법’의 입법과 예산 확충 등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권익 보호와 복지 개선에 크게 기여한 공으로 김용직 변호사가 수상하였다.
칼럼/한국장애예술인협회
출처: 에이블뉴스(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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