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폐 특성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자폐인들을 만나고 서로 '동족'이라는 걸 알아보며 소통하고, 어울리게 된 경로는 여럿 있었다.
이런 공간이 자폐권리운동, 신경다양성을 지향으로 두고 있는 자조모임과 단체들만으로 한정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단순히 자폐 당사자들 간의 모임일 수도 있겠고, SNS 등 인터넷상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자폐 당사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보게 되기도 한다.
신경다양성과 자폐권리운동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선 먼 과거에 비하면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는 소개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를 포함하여 정신적 장애에 관심 있을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들어본 적이 있는 단어가 되었다.
이렇다보니 정신적 장애인의 권익을 비롯한 당사자주의적 움직임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삶을 통해 느낀 바와 생각을 의견으로 표현하는 당사자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여러 차례 자폐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때로는 각자의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도 거쳐 가면서, 서로의 삶에 감정을 이입하며 진심을 공감하는 과정들이었다. 이런 입체적인 절차의 소통을 이어가며 깊어진 우정들도 적지 않게 경험했다.
그러면서 자폐 당사자들, 넓게는 정신적 장애 당사자들이 사회를 살아가는 과정과 모습이 한국에서만 해도 다양하다는 것을 폭넓게 알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1인분의 삶'을 얻어내어 살고 싶은 자폐 당사자들
권익운동에 직접 나서는 활동가가 되지는 않더라도, 많은 자폐인들은 자폐를 이유로 낙오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바라고, '자기 자신의 삶'을 얻어내어 살아가고 싶어 했다.
물론 이 부분만 보고 자폐인들이 모두 뭉쳐 권익운동에 통합되는 것에 아무 우여곡절이 없겠다고 해석해 버리면 곤란하다. 장애가 다양성이라거나 자기 자신의 정체성으로써 자긍심(pride)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을 감정을 담아 반대하는 소신을 갖고 불편함을 드러내는 당사자들도 있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자폐 내지는 정신적 장애에 대해 악감정 섞인 말을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치료해서 자신의 정신적 장애를 없애길 바라며 그게 해방이고 현실이라는 마음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어차피 자폐 완치법은 없는데 여기가 유토피아같은 사상이고 너네가 현실적인지는 난 잘 모르겠소' 식으로 한번 싸워 보자는 투의 비아냥보단 당사자에게 나은 대답을 하고 싶었다.
자폐 당사자 권리에 있어선 투쟁을 하더라도 그 대상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경다양성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자폐 당사자가 모두 반대편으로 극단적일 거라고 단정짓고 접근하는 것 역시 옳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시각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정신적 장애당사자의 권익을 말하더라도 자폐에 대한 연구에 반대할 이유는 없고, 그건 의학적 분야의 연구에서도 당사자 권리 친화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예외가 아니다.
자폐 당사자들 대부분이 신경전형인(비당사자)들 위주의 사회에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매번 높은 불안을 겪고 여러 번 속앓이하고 아픔도 겪으면서 때로는 그들이 그 삶의 힘듦을 한탄하게도 되기 마련이다. 미등록 자폐 당사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경우 개인의 상황에 맞는 필요한 도움과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늘 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자폐도 정상, 치료 반대'로만 읽혀버리기 쉬운 신경다양성이 자신의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모르겠단 사람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위에 언급한 예시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자폐 당사자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직접 와 닿을 더 나은 삶의 질이었지, 자폐인인 자신들 인권이 비자폐인 인권보다 못났고 열등하니 침해당하고 손해보는 게 마땅함을 스스로 강하게 외치고 싶은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신경다양성은 장애당사자의 어려움을 부정하는 '정상성 편입 선언'이 아니고, 그래야 한다.
자폐 당사자들에게는 크고 작은 차이는 조금씩 있더라도 자신의 자폐 특성으로 인해 인간관계부터 직장 생활 등 여러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은 일화가 있고 그것이 힘들다고 여기거나, 자폐 특성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마스킹) 정신적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 일상이다.
장애의 의료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해볼 문제도 되겠지만, 장애학에 관심을 두지 않고 '우연히 자폐인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이런 당사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신경다양성과 자폐권리운동을 과하게 이상주의적인 '유토피아 사상'처럼 현실성 없다는 체념 담긴 말을 하는 것은, 신경다양성이 '자폐(내지는 정신적 장애)는 정상이다', '치료가 필요없다'가 바탕인 것으로 읽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결과 장애인으로서 복지를 마땅히 받아야 할 장애등록과 당사자가 원하면 권리를 보장받으며 이용해야 하는 의료 서비스가 신경다양성적 관점에서 올바른가에 대한 질문까지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좀 더 나아가면 '어느 분야에선 신경다양인에게 더 뛰어난 능력'같이 신경다양성 운동 내에서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까지 나올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신경다양성 인재'가 어느 분야에선 신경전형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니까 비장애의 범주라는 류의 주장은 또다른 정상성 중심주의와 능력주의로 수많은 정신적 장애 당사자들을 소외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안 좋아한다.
신경다양성 담론이 많은 자폐 당사자들과 정신적 장애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당사자들끼리도 서로 조심스럽게 대화하는 주제가 된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사자 관점에서 통찰할 수 있는 여러 메시지들이 제기되는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발전해 나가는 정신적 장애인 권익운동과 연대를 만들어 가는 데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편하게 털어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자폐인에게는 그 공간이 보장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나는 전형인들 사회에서 매번 막히는 당사자의 말문을 또 막히게 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으니 이런 자세를 갖는 게 특별한 결심은 아니었다. 나도 자폐인이니까, 자폐인이 편하게 스스로의 자기표현을 할 수 있어야 나 역시 편할 것이라고 느꼈을 뿐이었다.
여기까지만 봐도 '모 아니면 도'라는 시각은 다양성의 스펙트럼을 다루는 관점에서는 특히 위험하다. 자폐 당사자들에게 정신세계를 어떻게 가지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다. 편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바를 표현할 수 있고, 필요한 지원과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주도할 여유를 갖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자폐 당사자들에게 차별과 편견 없게, 덜 마음고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데 모두의 공감이 모이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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