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저의 장애, 몸, 정신 드러내는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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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19.04.24 조회5,677회 댓글0건본문
▲ 문승현 화가. ⓒ문승현
‘제1회 이원형어워드 수상자’ 문승현 작가의 인터뷰
“장애예술 변화하고 있어…생각·운영 영세성 탈피해야”
캐나다에 거주하는 조각가 이원형 씨가 고국 장애미술인의 창작 활동 활성화를 위하여 ‘이원형어워드’를 제정하였다. 이원형 작가는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45년 전 고국을 떠나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세계적인 조각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이 작가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갖고 있는데 조각가로 성공하여 캐나다 오케드대학 등 3곳과 멕시코대학 1곳에 이원형어워드를 시상하여 신진 작가들에게 큰 격려가 되고 있다.
이번 다섯 번째 이원형어워드가 고국에서 마련된 것인데 이원형어워드 관리를 맡은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서 <장애예술인수첩>에 등록된 장애미술인 가운데 신인 그룹에서 3명의 후보를 추천하여 중진화가 3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수상자 한 명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결과 제1회 이원형어워드 수상자로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서양화가 문승현 작가가 선정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이원형어워드 운영을 맡은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에서 제1회 이원형어워드 상패와 상금 100만 원을 지난해 12월 29일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성공한 선배 작가가 후배를 위하여 상을 제정하여 격려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로 이원형어워드가 후배 양성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상의 의미를 소개하였다.
Q. 지난해 말 이원형어워드 수상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먼저 상을 제정하고 지원해 주신 이원형 작가께 감사드립니다. 장애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장애예술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아직 부족한 현실에서 뜻 깊은 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과 책임을 함께 느낍니다.
Q. 얼굴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인상 깊게 보았다.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라는 타이틀에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그렸는가.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라는 타이틀은 갤러리 활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전시 제목이고 그에 앞서 같은 작품 구성으로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의 제목은 ‘서 정’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서울문화재단이 지원했습니다. ‘서정’은 말 그대로 감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제 그림 속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나타나는데요. 저는 그 감정들에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밝고 어둡고 복잡한 인간 내면의 세계가 얼굴에 함축적으로 나타 나기 때문이죠.
저는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 그러하듯 제 감정의 어두운 면만을 주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외면한 채 밝고 당당한 면만 부각되어 보이는 것 또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찾고 있습 니다. 예술이 추구해야 할 것은 그러한 것들입니다.
Q. 문 작가는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데 장애 특성상 세밀한 붓 터치에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인데, 데뷔 20년차에 어느 정도 숙련된 베테랑 전업작가로서 어떤 답을 드려야 할지 난감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선입견에서 보자면 화가, 조각가, 건축가라는 직업은 예술가라기보다 기술자에 가깝습니다. 예술 개념의 역사에서 보아도 화가를 예술가로 분류했던 시기는 르네상스 이후 입니다.
그렇게 볼 때 세밀한 붓 터치가 어려운 뇌병변장애예술가들은 화가가 되기에는 부적 합합니다. 아마도 화가에 대한 미디어의 이미지화가 가져온 폐해일 테지만, 화가는 세밀한 붓터치로 일필휘지하여 사물을 모방하는 데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계신다면 직업으로 예술을 선택하시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특히 장애예술가가 되시기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개인적 의견입니다.
물론 저는 세밀화에 재능 있는 장애예술가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숙련된 노동과 강인한 정신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위대한 예술가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뇌병변장애인 중에서도 세밀화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작가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예술에는 장애 특성에 따른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무한한 변화와 가능성이 있을 뿐이 라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들에게 장애와 예술이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을 포함하여 거의 25년 동안 매일 즐겁게 작업해 오고 있습니다만 요즘의 예술에서 보자면 굳이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화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장애예술 지망생 들께 주지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Q.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전공을 정할 때갈등은 없었는지… 보통 장애인은 대학 전공을 가장 적합한 직업과 맞추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아마 진로와 인생에 대해서 고민이 없는 것이 고민이지 않을까 싶네요. 체력이 따라 주지 않아서 공부는 살짝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과 수석으로 장학금 받고 들어갔으니 없는 형편에 다행이라 여기며 열심히 다녔습니다.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고 실기장학금도 몇 번 받고 말이지요. 과 학생회장도 했었습니다. 충실한 학창 시절이자 제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였기도 하고 가장 가난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얘기가 잠깐 곁가지로 빠졌는데요.
저의 꿈은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고민 없이 그림을 배우고 전공을 선택했으며 졸업 후 바로 데뷔했습니다.
Q.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생활이 도움이 되었는가.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제가 장애예술을 접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사실전 비장애인예술가들과 십수 년 동안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애예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의 인연들, 입주작가 활동, 외부의 커뮤니티들과의 소통이 제가 이제 장애예술을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뇌성마비작가회 날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며 장애인예술의 현실을 더욱 선명히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뇌성마비작가회 날은 동시대 예술 담론을 주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려면 구성원들의 현실인식과 도전적 실험정신이 중요합니다. 다행히 저희 작가들은 동시대 예술이 어떠해야 하고 그 속에서 장애예술이라고 하는 소수자 예술 담론이 어떠해야 하는지 서로 치열하게 생각하고 논쟁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실험적 도전들을 하며 독보적 장애예 술단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예술가들이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낡은 이데올로기와 주도권 싸움의 퇴행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곳도 있고, 장애와 예술을 내걸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단체들도 분명 있습니다.
물론 일부의 경우이긴 하나 이런 행태들이 장애예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뇌성마비작가회 날은 동시대 예술 가운데에서 마이너리티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장애예 술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입니다.
Q.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 모든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시, 작곡, 피아노 연주 등… 각각 어떤 매력이 있는가.
앞에서 동시대 예술의 특징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예술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을까를 생각해 봤을 때 그건 아무래도 개방성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예술이 열려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 모든 사람에게, 지금은 그림을 못 그리는 수학 자도 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시각이 없는 시각장애인도 사진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도 작곡을 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지어 본 적 없는 컴퓨터프로그래머도 건축가가 될 수 있습니다.
피아노를 쳐 본 적 없는 뇌성마비장애인인 저는 공연을 만들고 작곡을 하며 춤을 춥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가, 화가, 작곡가, 건축가, 피아니스트, 무용수가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여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종기 시인의 시인들 예술 일까요? 저는 그저 지금의 예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술가로 성장하고 싶은 장애예술 지망생이 있다면 그림, 피아노, 춤, 노래 그런 것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도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아두십시오. 그것이 지금의 즐거운 예술이니까요.
Q. 개인적인 얘기도 듣고 싶다. 가족은.
가끔 여자 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없고요. 하지만 관심은 많습니다. 취미는 요리입니다. 파스타도 만들죠. 된장찌개는 기본이고, 본업이 시원치 않아서 부업으로 식당을 차려도 되지 않을까 라는 농담을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계시고요. 저는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의외로 공부를 잘하는 바람에 기대가 크셨던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작가가 거기서 거기죠. 잘 나가면 얼마나잘 나가겠습니까.
Q. 개인전, 단체전, 공연 등 정말 많은 일을 했는데 이런 활동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거의 지원금으로 진행되는 예술작업들인데요. 지원금으로 진행되는 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금이기 때문에 생활에 대한 지원과는 구별됩니다.
저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데 대한 프로세스를 생산하는 1차 생산자, 예를 들어 기획자, 감독, 작곡자, 연출자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수를 받는 편입니다. 그러나 모든 예술 활동이 경제적 가치를 띄고 진행되지는 않기 때문에 지원금 제도가 있는 것이고요.
경제적으로 충분히 이익을 낼 수있는 공연이나 전시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스폰서 계약이나 광고 계약을 통해서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의 요지는 이것인 것 같습니다. 저의 장애예술 활동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장애예술 활동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두렵고 거친 세상이 기다리고 있습 니다. 그러나 폭풍이 분다고 폭풍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변화하고 그 변화는 멈출 수없습니다. 장애예술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눈물 콧물 흘리는 장애 극복 스토리는 장애 예술 장르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대 예술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한 다면 그것은 그저 신파극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럴 힘이 없다고 해서, 규모가 작다고 해서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평범하고 영세하기 때문이죠. 규모가 소규모인 것과 영세한 것은 다릅니다. 생각과 운영의 영세성을 탈피해야겠습니다. 으리으리한 미술관, 공연장을 짓고 비싼 작품을 팔란 얘기가 아닙니다.
소규모 단체라 하더라도 시장의 트랜드를 읽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디자인 경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각 있는 디자이너 한 명을 고용하더라도 디자이너의 판단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생각과 감각이 영세한 (여기서 영세하다는 표현은 빈약하다는 뜻입니다.) 단체들은 이 디자인 경영을 무시함으로써 전체 브랜드 가치를 훼손합니다.
일 년 전 어느 장애인단체 공연에서 저는 차마 눈을 의심하게 할 만큼 조잡한 공연 리플릿을 보며 좌석에 관객이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극히 일부의 사례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을 심기에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깨진 유리창 효과라고 하지요. 장애예술계가 이런 영세성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수억 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아 아트페어를 한들, 그림 한 점 팔리지 않는 아트페어가 장애예술인들에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면 제 작품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마어마하니까요. 하하… 제가 작품을 팔고자 그렸다면 아마도 지금의 곤궁함에서는 벗어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술적 자율성을 침해받고 영세 개인사업자로 전락해 지금 이 인터뷰도 못하고 있겠죠. 예술 가들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즐겁죠. 예술인 지원과 복지의 핵심은 이겁니다.
즐겁게 놔둬라. 그러나 지금은 지원이라 쓰고 홍보대행이라고 읽습니다. 그리고 대행사에 귀찮은 서류더미 들을 잔뜩 안겨 주죠. 제가 전년도에 작업을 하면서 생산한 서류가 300페이지가 넘습니다.
확인도 하지 않을 이력서는 왜 필요한 거지… 라고 묻곤 합니다. 예술인 복지의 핵심은 돈이 아닙니다. 예술가들을 놔둘 수 있는 시간, 놔둘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관객과 함께 놓일 수 있는 곳입니다.
Q. 앞으로 안정적으로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전에 MBTI라는 성격 유형 검사를 한 적이 있었죠. 믿는 편은 아니지만 저는 어려운 길을 개척하는 모험가형으로 나오더군요. 쉽지 않은 인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하곤 한답니다.
‘어려움이 닥칠수록 나는 더 강해질 것이고 그 모든 경험이 나의 작품이 되는 거지’라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 「노름꾼」 등은 실제로 그가 처형 당할뻔 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지난날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요.
그러나 프랑스 예술사회학자 이브 미쇼는 그의 책 「예술의 위기」에서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인 예술지원과 예술시 장에서의 지나친 상업주의가 지금의 프랑스 예술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이지요.
제가 책을 읽은 지가 20년이 넘었으니 지금은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의지에만 의존할 수도 없고, 외부 페트런, 후원자나 정부, 시장에 의존할 수도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비유인데요. 예술가를 이카루스에 비유하곤 합니다.
자신의 태양 같은 의지에 다가가려 하면 밀납으로 붙인 날개가 녹아떨어지고 습기 품은 대양의 후원자나 시장에 바짝 다가가 날면 날개가 젖어 바다에 빠지고 맙니다. 그 중간 어디에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유지해야 하죠. 모험은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예술은 가장 흥미진진한 모험이고요.
Q. 어떤 화가로 성장하고 싶은가.
어떤 작가가 되기보다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작업이 변화한다면 저를 드러내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저는 아직 대중적 인지도는 낮기 때문에 더 실험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저의 장애, 몸, 정신을 드러내는 실험이지요. 더 자주 드러낼수록 더익숙해지고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겁니다. 그 속에서 더 아름다운 것들도 발견하게 되겠지요. 그것이 예술입니다.
문승현
# 주요 경력
협성대학교 미술학과 졸업(1999)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2011~2012, 2016) 뇌성마비작가회 날 대표(2012~2013)
# 수상
2018 제1회 이원형어워드상 2016 전국장애인도예공모전 올해의 작가상 제6회 경향 미술대전 입선 제19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장려상 제9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입선
# 개인전
제7회 문승현 개인전‘ 침묵 속 이야기를 그리다’, 한우리정보문화센터, 갤러리 활, 2018 제6회 문승현 개인전‘ Gray Silhouette’, 가톨릭청년회관 다리상자, 잠실창작스튜디오 하늘연, 2015 제5회 문승현 개인전‘ Soul Face’, 중 아트마켓, 용인, 2013 제4회 문승현 개인전‘ 마음, 하늘을 바라보다’(2012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기획프로잭트 지원사업)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2 제3회 문승현전(한국문화예술위원회106 지원 사업), JH갤러리,. 서울, 2010 제2회 문승현전, 장애인창작스튜디오갤러리, 서울, 2010 제1회 문승현전, 갤러리 그림시 기획, 수원, 2000.
# 단체전
2016 굿데이 전. 성동문화재단 소월아트홀 2016 창작 공간 페스티벌 2012~2016 국제누드드로잉아트페어 2012~선사랑드로잉회전 2012~2015 시간과 나 전, W스테이지 안국, 잠실창작스튜디오 2012~2015협전, 갤러리 사이, 서울, 2015 2014 장애인예술가들을 위한 융합예술교육프로그램 수필화 전,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2014 프레쉬 전, 갤러리 라메르 2013 뇌성마비 장애인 작가 기획전시‘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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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장애예술인협회 (klah1990@hanmail.net)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4-23 15: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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