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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엄마, 대단한 엄마, 위대한 어머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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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19.05.23 조회5,4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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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생방송 아침마당에 출연한 첼리스트 배범준. ⓒ방송화면 캡쳐 (엄마는 그래야만 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용기를 내야 한다.) “저기서부터 걸어봐 팔 굽히지 말고 다리도 쭉 펴서” 검은색 코트와 모자를 쓴 10살 이였던 나는 담임선생님의 설명처럼 교실에서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천천히 걸었다. 입고 있는 옷이 마치 소련군 코트 같다며 아이들 앞에서 소련 군인의 행진을 흉내 냈었다. 40대 여선생님은 625동란 때 남으로 탈출한 이야기를 반 아이들에게 자주 하셨다. 북에서 탈출하려는 수많은 피난민들 앞에 배는 한척 밖에 없었다고 했다. 망연자실 했지만 아이들만이라도 살게 하자며 어미의, 아비의 옷을 꽉 움켜잡고 울부짖는 아이의 고사리 손들을 강제로 떼어 앉혀야 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배에 더이상 찰 수 없을 정도로 수십명의 아이들이 탔을 그 때 선생님의 어머님이 자신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 끌어 그 배안으로 돌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을 태우고 어머님은 배를 바다로 바다로 밀었다고 한다. 그 때 선생님의 나이가 방년(20세)이였으니 주위에 있던 이들의 원성이 대단했단다. 어서 내리라고, 아이들만 태워야 한다고, 여기 아이가 더 있다고 피 토하는 외침들 속에 “정신 차려! 절대 듣지 마! 귀 막아~~~~~~” 선생님의 어머님은 그렇게 소리소리 지르셨다고 한다. 딸이 그 통곡 속에 혹여 배에서 내릴까봐 절대 내리지 말라고, 너는 우리 집의 막내이니 너만이라도 살라고... 점점 멀어지는 육지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 그리고 사람들의 원성으로 맞고 있어도 꼼짝 하지 않는 어머니가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배에서 내리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자주 하셨던 그 이야기가 그 때는 몰랐다. 선생님의 그리움이며 아픔이고 한이란 것을... 어머니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은 없었다는 선생님이 문득 생각이 났다. ( 냉소 대신 희망을 선택하자.) 지난해 배 범준은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를 만나고 싶어 했다. 이유는 칭찬 할 꺼란다. 나는 웃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그것이 현실로 이뤄 질 꺼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저서 비커밍(becoming)을 읽었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어머니,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이였다. 그리고 철저하게 지키며 실천 했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남들보다 두배 이상 잘해야 절반이라도 인정받는다” 흑인들의 금언과 지켜야 할 모든 것의 수준을 더하여 실천하려 했다는 내용에서 그 책을 모셔 둬야 했다. 그녀의 노력을 존경한다. 그러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이지 않는가... 최근에 그 책을 다시 꺼냈다. ‘영부인이니까’ 라는 생각을 치우고 펼쳤다. 버락 오바마가 그녀에게 한 말이 눈에 들어왔다. “냉소 대신 희망을 선택하자”(왜 하필이면 나한테 왔을까?) 지난 7일 오전 방송된 KBS1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 어버이날 기획 ‘대단한 엄마들’에 출연햇다. 이순도 기타리스트 김지희 모녀, 조영애 성악 박모세 모자, 성은희 픞루이스트김동균 모자와 함께 첼리스트 배범준과 출연을 했다. 태아 태부터 장애를 알고도 신실한 종교인으로 기도와 헌신의 삶을 기꺼이 살아 가시는 성은희님. 자녀를 위해 어디든지 적극 방문하시고 장애인문화협회 홍보대사로 키워내신 이순도님, 아들의 장애를 극복하게 하기 위한 훈련을 거듭하며 조기에 음악적 재능을 키워 하트하트재단의 장학금 후원으로 석사과정까지 수료 할 수 있도록 한 성은희님과 함께 생방송을 했다. 새벽 6시30분 방송국에 도착하여 방송국에서 메이크업을 받을 때 울컥 눈물이 나왔다. ‘내가 여기 왜 왔지? 공영방송의 다큐는 모두 거절 했으면서 생방송에는 왜 겁도 없이 나온거야?‘ 덜컥 후회가 되고 긴장이 되었다. 사실 욕심이었다. 아들 범준이를 텔레비전에 나오게 하고 싶은 마음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배범준은 장학금을 후원 받는 재단에 소속 되어 있지도 않고 어미가 적극적이지 않아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연주 활동이 전혀 없었다. 장애학생들 대상의 장학금과 교육의 기회는 증가 했지만 청장년 발달장애인 대상의 교육지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4월 19일 서울대학병원에서 첫 연주가 있었다. 배범준은 준비한 곡을 다했음에도 무대에서 내려 오지 않았다. 그동안 무대에서 얼마나 연주 하고 싶었을까? 더군다나 연주비를 모아야 레슨을 받는 현실이었기에 첼로와 함께 연주 하는 그 시간을 더 갖고 싶었을 것이다. 생방송에 나오겠다는 욕심을 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배범준에게 연주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왜 하필이면 나한테 왔을까?’ 엄마는 그래야만 한다고 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고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나는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졌다. 왜 하필 나였을까? 왜 내가 너의 엄마일까?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 언제까지 푸념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기적을 만났다. 없는 용기 한번 내기위해 몇 달을 끌고 끙끙 앓았지만.. '해보자',,'할 수 있어' 라는 마음으로 욕심을 내어 출연한 생방송이었다. '대단한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배범준을 방송에서 연주 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원고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큰 글씨로 준비 했고 청심환도 먹었다. 그런데 안경이 없다. 큰일이다.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다그쳤다. “정신 차려!~ 범준이가 연주 할 수 있어!”(“내가 되다. 우리가 되다. 그 이상이 되다”) 방송이 끝나고 부끄러웠다. 나도 엄마라고 용기 냈지만 실은 한없이 작아졌다. 정말 위대하신 어머님들과 함께 해서 영광이었지만 반면 비교되어 아들에게 미안했다. 피하고 도망 친 지난날들이 생각나서 고개를 들 수 가 없었다. 장애자녀의 어머니로 장애인을 위한 단체를 운영하는 부모님들,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가장 앞에서 애쓰시는 분들. 끝없는 헌신과 수많은 노력을 하시는 수많은 어머니, 아버님들이 앉아야 할 자리였다. 나는 툭하면 포기하고 자신이 없어 회피를 했었다. 괴롭힘을 당하고 힘들어 할 때 아들 편에서 목소리를 내어 주지 못했다.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자고 등 떠밀어야 마지못해 어설프게 그것도 ‘용기’라며 겨우겨우 몇 발 걸었다. 그런 어미였기에 방송 내내 바늘방석이었다. 어미라고 앉아도 된다고 응원 주시는 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따뜻하게 응원 해 주시는 그 손 덕분에 저도 어미가 됩니다. 서로 잡아주는 손과 마주잡아 '우리'가 되게 하고 '꿈꾸는 이상'에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따뜻한 하나의 손이 되겠습니다. 방송에 함께 하지 않았지만 자식을 위해 헌신을 다하시는 세상 모든 어머님들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책의 목차를 소리 내어 읽어 봅니다. “내가 되다. 우리가 되다. 그 이상이 되다.” 배 범준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어미입니다. 우리가 되어 그 이상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첼로와 평화를 연주하는 미소천사 배범준의 母 김태영입니다.- ( 생방송 출연료는 서울대학교병원 암 환우를 위해 전액 기부 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칼럼니스트 김태영 (project-history@hanmail.net) 출처: 에이블뉴스(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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