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설시조 소설 개척자 주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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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22.03.30 조회4,804회 댓글0건본문
기법 습득하고 나면 뜻밖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글쓰기
요즘 우리 사회는 나이듦이 유죄가 된다. 고령화사회가 되면 노인이 짐이 된다며 노인 문제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고령화사회를 슬기롭게 보내기 위해서는 노인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멋진 시니어를 소개하며 2022년은 노인이 짐이 아니라 노인 세대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기를 바란다.
거제도 장애소녀의 꿈
주영숙은 섬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가느다란데다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아 발끝으로만 걷는다. 나이가 들어서는 멀쩡하다고 믿었던 왼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해 걸을 때마다 비명을 지를 정도의 아픔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 동반해야 하는 아픔에 대하여 일찌감치 달관했다.
"걸을 수는 있어. 손은 멀쩡하잖아? 아프지 않은 친구들이 뛰어놀 시간에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쓸 거야, 그림을 그릴 거야."
겨우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런 결심을 한 그녀는 4학년이 되자 당시의 4·19혁명 목격담을 써서 도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고 그림으로도 상을 자주 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학원』이라는 청소년 잡지에 산문 ‘그리움’이 입선되었는데 그때부터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소설가는 발로 뛰어야 한다. 다리도 아픈 네가 어떻게 소설가가 된다는 말이냐?’라며 꿈도 꾸지 말라고 하셨다.
그녀가 고등학교 (남녀공학)를 졸업할 때쯤 가정 형편이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멸치 어장 사업이 곤두박질치면서 아버지가 덜컥 앓아 누웠고, 그녀는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하였다.
대학 진학은 물론 소설가 되는 꿈마저 접은 상태에서 그녀는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서울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고, 우여곡절 끝에 택한 직업이 동양자수 기술자였다.
적막하게 앉아 마치 도 닦듯이 수놓는 그 일이 싫지 않았고, 선천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성 때문인지 중학교 가정 시간에 수를 놓아 본 경험이 전부였지만 그녀는 다른 돈 되는 직업 다 놔두고 유독 수놓기에 매달렸다. 그러다 직접 도안을 만들어서 수를 놓았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래서 가게주인이 동업하자고 제안을 할 정도였다.
살아야 하는 여자
"누가 나랑 결혼하겠어? 안 해!"
절대로 결혼은 안 하리라고 결심하였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참전용사이면서 빈털터리인 한 남자에게 붙들려서 아들 둘을 낳고 살게 되었다.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최선을 다하자."
그녀 나이 서른 무렵에 진해 중앙시장에서 ‘꽃바람 수예점’을 운영하게 되었고, 남편에게는 표구 기술을 배우게 하였다. 그녀의 직업엔 누군가 표구해 줄 사람이 절실하였고, 그래서 가게 딸린 집을 얻어서는 표구사를 차려 놓고 표구 기술자를 채용, 기술을 익히게 한 거였는데, 다행히 남편의 표구 기술이 일취월장하여 혼자 표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병풍 하나만 펼쳐도 꽉 차는 세 평가량의 가게에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수 재료를 팔며, 자수를 가르치는 한편 많은 작품을 생산하였다. 새끼를 품고 있는 호랑이, 내려오는 호랑이, 달밤을 뚫고 달려가는 호랑이 등등을 직접 도안하여 수놓았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예수’도 피부결 하나하나 연구해 가며 수놓았는데, 그 작품은 주문 제작으로, 여섯 점이나 만들었다.
‘꽃바람 수예점’은 그야말로 꽃바람을 날렸다. 수놓는 여자로서의 전성기가 바로 그 시기였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녀의 모든 창작 활동의 밑거름이었다. 가게를 하는 틈틈이 글을 써서 투고하여 『샘터』, 『엄마랑 아기랑』 등에 게재되기도 했고 동양화의 기초인 사군자 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거제도 장애소녀의 꿈
주영숙은 섬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가느다란데다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아 발끝으로만 걷는다. 나이가 들어서는 멀쩡하다고 믿었던 왼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오기 시작해 걸을 때마다 비명을 지를 정도의 아픔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 동반해야 하는 아픔에 대하여 일찌감치 달관했다.
"걸을 수는 있어. 손은 멀쩡하잖아? 아프지 않은 친구들이 뛰어놀 시간에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쓸 거야, 그림을 그릴 거야."
겨우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런 결심을 한 그녀는 4학년이 되자 당시의 4·19혁명 목격담을 써서 도대회에서 상을 타기도 했고 그림으로도 상을 자주 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학원』이라는 청소년 잡지에 산문 ‘그리움’이 입선되었는데 그때부터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소설가는 발로 뛰어야 한다. 다리도 아픈 네가 어떻게 소설가가 된다는 말이냐?’라며 꿈도 꾸지 말라고 하셨다.
그녀가 고등학교 (남녀공학)를 졸업할 때쯤 가정 형편이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멸치 어장 사업이 곤두박질치면서 아버지가 덜컥 앓아 누웠고, 그녀는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하였다.
대학 진학은 물론 소설가 되는 꿈마저 접은 상태에서 그녀는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서울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고, 우여곡절 끝에 택한 직업이 동양자수 기술자였다.
적막하게 앉아 마치 도 닦듯이 수놓는 그 일이 싫지 않았고, 선천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성 때문인지 중학교 가정 시간에 수를 놓아 본 경험이 전부였지만 그녀는 다른 돈 되는 직업 다 놔두고 유독 수놓기에 매달렸다. 그러다 직접 도안을 만들어서 수를 놓았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래서 가게주인이 동업하자고 제안을 할 정도였다.
살아야 하는 여자
"누가 나랑 결혼하겠어? 안 해!"
절대로 결혼은 안 하리라고 결심하였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참전용사이면서 빈털터리인 한 남자에게 붙들려서 아들 둘을 낳고 살게 되었다.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최선을 다하자."
그녀 나이 서른 무렵에 진해 중앙시장에서 ‘꽃바람 수예점’을 운영하게 되었고, 남편에게는 표구 기술을 배우게 하였다. 그녀의 직업엔 누군가 표구해 줄 사람이 절실하였고, 그래서 가게 딸린 집을 얻어서는 표구사를 차려 놓고 표구 기술자를 채용, 기술을 익히게 한 거였는데, 다행히 남편의 표구 기술이 일취월장하여 혼자 표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병풍 하나만 펼쳐도 꽉 차는 세 평가량의 가게에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수 재료를 팔며, 자수를 가르치는 한편 많은 작품을 생산하였다. 새끼를 품고 있는 호랑이, 내려오는 호랑이, 달밤을 뚫고 달려가는 호랑이 등등을 직접 도안하여 수놓았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예수’도 피부결 하나하나 연구해 가며 수놓았는데, 그 작품은 주문 제작으로, 여섯 점이나 만들었다.
‘꽃바람 수예점’은 그야말로 꽃바람을 날렸다. 수놓는 여자로서의 전성기가 바로 그 시기였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녀의 모든 창작 활동의 밑거름이었다. 가게를 하는 틈틈이 글을 써서 투고하여 『샘터』, 『엄마랑 아기랑』 등에 게재되기도 했고 동양화의 기초인 사군자 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엄청난 도전
아들 둘이 성인이 되자 엄마의 역할이 많이 덜어졌다. 없는 살림에 아이들 키우느라고 늘 허덕이다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냥 나이 든, 그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절룩거리는 볼품없는 자신의 모습에 그녀는 의기소침해졌다.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고, 전통 공예가이며 화가였지만 그 모두가 자기만족이었지 누가 알아주지도, 살아갈 명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엄청난 도전을 결심한다. 대학 입학을 시도한 것이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학력고사를 준비하느냐고 미친 짓이라고들 하였지만, 그녀는 도전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1968년에 거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에 경기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였으니, 30년 늦깎이 만학도의 길을 걷게 된 거였다.
경기대학교에서 문창과·국문과 복수전공을 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평론 전공을 하였으며 논문 “아픔의 변주곡과 체험적 시조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2009년 2월 20일엔 경기대학교에서 논문 “사설시조의 변용양상 연구-한국 현대소설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1학기에는 정형시집 「손톱 끝에 울음 이…」를 내고, 3학기에는 글쓰기의 여러 부문을 아우른, 소설과 평론의 경계를 허물어 낸 퓨전소설집 「순간」을 출간하였으며, 5학기에는 사설시조 형식의 운문소설인 동시에 장편시조집인 「눈물꽃향기의 샘」을 펴냈으며, 박사과정 정규 논문학기인 6학기에 한 번에 박사논문이 통과되었다.
그녀는 장애인이며 만학도라는 불리한 조건을 오히려 무기로 삼았다. 졸업 후 경기대학교, 강남대학교, 가천대학교 등 대학 강단에서 젊은 대학생들에게 학문 이상의 것을 가르칠 수 있었다.
다작의 여왕
주영숙은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상동로에 위치한 살림집과 작업장 그리고 소박한 전시장을 갖춘 난정뜨락 (蘭亭은 주영숙의 호)에 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퓨전아티스트라고 한다. 소설은 물론 시, 시조, 그림, 수예 등을 취미로 조금씩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문학 영역만 다루고자 한다.
난정은 1990년에 첫 장편소설을 낸 이후 다수의 소설집, 시집, 시조집, 그리고 인문교양도서를 출간했다. 2013년에 「황진이 돌아오다」, 2020년에 「칼, 춤추어라!」 (상하권) 와 「내 이름 마고」 등이 그녀의 대표작이다. 이는 본격적으로 내놓은 사설시조 형식의 소설들이며, 또 다른 사설시조 형식의 장편소설이 준비되어 있다.
그녀는 한국 고유의 문학 장르인 사설시조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단편소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장편소설에까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무한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문학인은 물론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고자 한다.
이 소설의 기법은 얼핏 시나 소설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단순한 시, 소설이 아니다. 사설시조 기법을 습득하고 나면 뜻밖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이토록 흥미로운 기법을 배우려는 소설가 지망생이 아직 없다. 시조를 배우고 나아가 사설시조에까지 도전해 보고서야 가능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젠가는 그런 조건을 갖춘 문인, 특히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장애인이 후학으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경험상 장애인이 잘할 수 있겠다는 믿음 때문이다.
사설시조 형식의 소설은 흥겹게 잘 읽히는 소설의 몸맵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가독성이 좋고, 그만큼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영숙은 사설시조 형식의 한국 소설이 가장 한국적인 문학이라는 소신으로 사설시조 형식의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장애인은 도전의 달인이며, 모든 장애예술인이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난정 문학의 대장정
2012년엔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소설편」 (2012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 「눈물은 배우는 게아니다」 (연암 박지원 시, 산문편) 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2년 1월, 몇 년간 치열하게 집필한 「완역 한글판 목민심서」 12권을 탈고하여 출판사에 넘기고 8월 중에 발간하기로 계약했다.
「목민심서」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경악 수준이었다. 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나뉜 신분 사회제도에서의 책인 것은 분명한데, 만민평등 사상은 현대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을 종종 접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바이블이나 불교 경전 뺨치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이 책은 간혹 그 번역본이 나오기는 했지만, 독자가 이해하건 말건 직역해 놓아서 읽는다 한들 뭔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난정의 「완역 한글판 목민심서」 는 교양 도서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서문에서 ‘참으로 어진 수령이 나타나 제 직분을 다하겠다고 마음먹는 다면 아마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하였다.
난정은 「완역 한글판 목민심서」 12권을 집필하면서 마치 다산의 간지러운 데를 긁어 주듯이 역자 재량껏, 그 제목에 해당하는 연암의 주목되는 글을 넣기도 하고 다산의 다른 글을 넣기도 하여 이해를 돕고자 하였으며, 12권째에는 다산의 연보를 배치하되, 마치 역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도록 서술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감히 대 선학의 명저 한문 서적을 몽땅 해부하여 순 한글로 바꿔 버렸다.
난정의 가족은 두 아들과 두 며느리와 두 손녀와 두 손자 합하여 꼭 10명이고, 그중 작은아들네 3명은 독립하여 현재 뜨락 식구는 7명이지만 3대가 살고 있는 대가족이다. 손주 보기 힘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
난정은 장애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소중히 생각한다. 1990년 장편소설 「날개 없는 영혼」으로 제1회 대한민국 장애인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작가 생활의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상을 수상했지만 2017년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수상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
50년 동안의 작가 생활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집필은 쉬워도 독자를 만나기 위한 출판 과정에 늘 어려움이 있었다.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문학 공모전 소식이 뜨면 자기도 모르게 글을 쓴다. 공모전 결과는 번번이 좋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서 쓴 글이 다시 책을 출간하는 동력이 되곤 했다.
올해 72세의 난정에게서는 에너지가 넘친다.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넘치며, 그 많은 이야기를 날밤을 새워서라도 집필할 수 있는 열정이 있다. 난정은 영원한 문학소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주영숙
아들 둘이 성인이 되자 엄마의 역할이 많이 덜어졌다. 없는 살림에 아이들 키우느라고 늘 허덕이다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냥 나이 든, 그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절룩거리는 볼품없는 자신의 모습에 그녀는 의기소침해졌다.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고, 전통 공예가이며 화가였지만 그 모두가 자기만족이었지 누가 알아주지도, 살아갈 명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엄청난 도전을 결심한다. 대학 입학을 시도한 것이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학력고사를 준비하느냐고 미친 짓이라고들 하였지만, 그녀는 도전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1968년에 거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에 경기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였으니, 30년 늦깎이 만학도의 길을 걷게 된 거였다.
경기대학교에서 문창과·국문과 복수전공을 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평론 전공을 하였으며 논문 “아픔의 변주곡과 체험적 시조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2009년 2월 20일엔 경기대학교에서 논문 “사설시조의 변용양상 연구-한국 현대소설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1학기에는 정형시집 「손톱 끝에 울음 이…」를 내고, 3학기에는 글쓰기의 여러 부문을 아우른, 소설과 평론의 경계를 허물어 낸 퓨전소설집 「순간」을 출간하였으며, 5학기에는 사설시조 형식의 운문소설인 동시에 장편시조집인 「눈물꽃향기의 샘」을 펴냈으며, 박사과정 정규 논문학기인 6학기에 한 번에 박사논문이 통과되었다.
그녀는 장애인이며 만학도라는 불리한 조건을 오히려 무기로 삼았다. 졸업 후 경기대학교, 강남대학교, 가천대학교 등 대학 강단에서 젊은 대학생들에게 학문 이상의 것을 가르칠 수 있었다.
다작의 여왕
주영숙은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상동로에 위치한 살림집과 작업장 그리고 소박한 전시장을 갖춘 난정뜨락 (蘭亭은 주영숙의 호)에 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퓨전아티스트라고 한다. 소설은 물론 시, 시조, 그림, 수예 등을 취미로 조금씩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문학 영역만 다루고자 한다.
난정은 1990년에 첫 장편소설을 낸 이후 다수의 소설집, 시집, 시조집, 그리고 인문교양도서를 출간했다. 2013년에 「황진이 돌아오다」, 2020년에 「칼, 춤추어라!」 (상하권) 와 「내 이름 마고」 등이 그녀의 대표작이다. 이는 본격적으로 내놓은 사설시조 형식의 소설들이며, 또 다른 사설시조 형식의 장편소설이 준비되어 있다.
그녀는 한국 고유의 문학 장르인 사설시조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단편소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장편소설에까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무한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문학인은 물론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고자 한다.
이 소설의 기법은 얼핏 시나 소설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단순한 시, 소설이 아니다. 사설시조 기법을 습득하고 나면 뜻밖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글쓰기이기도 하다. 이토록 흥미로운 기법을 배우려는 소설가 지망생이 아직 없다. 시조를 배우고 나아가 사설시조에까지 도전해 보고서야 가능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젠가는 그런 조건을 갖춘 문인, 특히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장애인이 후학으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경험상 장애인이 잘할 수 있겠다는 믿음 때문이다.
사설시조 형식의 소설은 흥겹게 잘 읽히는 소설의 몸맵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가독성이 좋고, 그만큼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영숙은 사설시조 형식의 한국 소설이 가장 한국적인 문학이라는 소신으로 사설시조 형식의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장애인은 도전의 달인이며, 모든 장애예술인이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난정 문학의 대장정
2012년엔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소설편」 (2012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 「눈물은 배우는 게아니다」 (연암 박지원 시, 산문편) 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2년 1월, 몇 년간 치열하게 집필한 「완역 한글판 목민심서」 12권을 탈고하여 출판사에 넘기고 8월 중에 발간하기로 계약했다.
「목민심서」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경악 수준이었다. 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나뉜 신분 사회제도에서의 책인 것은 분명한데, 만민평등 사상은 현대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을 종종 접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바이블이나 불교 경전 뺨치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이 책은 간혹 그 번역본이 나오기는 했지만, 독자가 이해하건 말건 직역해 놓아서 읽는다 한들 뭔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난정의 「완역 한글판 목민심서」 는 교양 도서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서문에서 ‘참으로 어진 수령이 나타나 제 직분을 다하겠다고 마음먹는 다면 아마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하였다.
난정은 「완역 한글판 목민심서」 12권을 집필하면서 마치 다산의 간지러운 데를 긁어 주듯이 역자 재량껏, 그 제목에 해당하는 연암의 주목되는 글을 넣기도 하고 다산의 다른 글을 넣기도 하여 이해를 돕고자 하였으며, 12권째에는 다산의 연보를 배치하되, 마치 역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도록 서술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감히 대 선학의 명저 한문 서적을 몽땅 해부하여 순 한글로 바꿔 버렸다.
난정의 가족은 두 아들과 두 며느리와 두 손녀와 두 손자 합하여 꼭 10명이고, 그중 작은아들네 3명은 독립하여 현재 뜨락 식구는 7명이지만 3대가 살고 있는 대가족이다. 손주 보기 힘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
난정은 장애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소중히 생각한다. 1990년 장편소설 「날개 없는 영혼」으로 제1회 대한민국 장애인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작가 생활의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상을 수상했지만 2017년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수상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
50년 동안의 작가 생활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집필은 쉬워도 독자를 만나기 위한 출판 과정에 늘 어려움이 있었다.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문학 공모전 소식이 뜨면 자기도 모르게 글을 쓴다. 공모전 결과는 번번이 좋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서 쓴 글이 다시 책을 출간하는 동력이 되곤 했다.
올해 72세의 난정에게서는 에너지가 넘친다.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넘치며, 그 많은 이야기를 날밤을 새워서라도 집필할 수 있는 열정이 있다. 난정은 영원한 문학소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주영숙
학력
경기대학교 한국동양어문학부 문예창작학과(부전공-국어국문, 미술평론)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비평전공) 졸업 경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현대문학전공) 졸업, 문학박사 경기대학교, 강남대학교, 가천대학교 등 외래교수 역임
집필
1989 시집 「가을시인에게」(자유문학사) 1990 시집 「사랑의 안팎」(도서출판 이사야) 1990 장편소설 「내일은 죽을 수 없는 女子」(이사야) 1991 장편소설 「날개 없는 영혼」(제1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 1991 시집 「비밀 낙서첩」(도서출판 주변인의 길) 1992 장편소설 「날개 없는 영혼」(한국장애인복지신문사) 1998 장편소설 「작은 巨人의 딸」(도서출판 도움이) 1998 장편소설 「女子는 몇 번 사랑하는가」 上,下(새앎 출판사) 1999 ‘사랑하는 나의 딸’(당산문학상 단편소설 수상) 2000 시화집 「사랑이 없어 슬픈 詩」(일송북) 2000 『시조시학』 2000년 가을호 신인작품상 ‘꽃, 그 놀빛 언어’ 외 2001 『월간문학』 2001년 3월호 제93회 신인작품상 동화 부문 당선 ‘뽀미가 된 세랑이’ 2001 경기대학교 『학술문예』 소설 入賞 2003 소설집 「나쁜 그림」(도서출판 연인) 2004 시선집 「참았습니다 그리워도, 그리워도」(도서출판 연인) 2004 계간 『한국문학예술』 2004 여름호, 평론신인상 ‘원형구도와 소태맛의 소설미학’ 2006 시조집 「손톱 끝에 울음이…」(고요아침) 2007 소설집 「순간」(고요아침) 2008 장편시조집 「눈물꽃향기의 샘」(고요아침) 2009 전문서 「사설시조조 한국소설」(고요아침) 2012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소설편」(북치는 마을) 2012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산문 시편(북치는 마을) 2013 장편소설 「황진이 돌아오다」(아라) 2020 사설시조 장편연작소설 「칼, 춤추어라!」 上,下(북치는 마을) 2020 사설시조 장편소설 「내 이름 마고」(북치는 마을) 2021 『중앙대문학』 단편소설 ‘양아각의 비밀’ 게재 2021 월간 『신문예』 단편소설 ‘그의 인생론’ 게재 2022 「완역 한글판 목민심서」 12권(국학자료원 ㈜새미)
수상
1997 용인시 여성상 2003 경기대학교 문화상 2010 중앙대학교 자랑스러운 예대인상 2011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7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국무총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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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장애예술인협회 (klah1990@hanmail.net)
출처: 에이블뉴스(2022-0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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