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블뉴스 박선희 칼럼니스트】 은성호. 피아니스트. 자페스펙트럼증후군 이 있는 피아노 영재. 이렇게 불리는게 건기의 형이다. 건기는 형을 한번도 형이라고 불러본적 없다.
그냥 "야"라고 불렀다. 자라면서 지금까지. 은건기는 태어나 보니 그런 형의 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관심은 온통 형이다.
어딜가나 데리고 다니고 옷 입혀주고 이제 서른 살이 넘었는데 면도도 해준다. 형이 음악에 재능을 보이자 모든 생활은 형의 음악교육에 집중되있다.
은성호의 엄마는 그외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아빠가 집을 나갔을까 건기는 아빠 마음이 이해가 된다.

건기는 늘 엉뚱한 말만하고 맘에 안드는 일 있으면 소리지르고, 말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따라하며 이죽거리고 하는거라곤 오로지 피아노밖에 칠 줄 아는게 없는 형이 꼴보기 싫었다.
아니 형보다 세상에 형이 전부인 엄마가 싫다. 건기도 피아노 좀 친다. 교내 경연에 나갈 실력이 되지만 엄마는 안 반가운 눈치다.
형 뒷바라지도 힘든데 둘째까지 어떻게 뒷바라지를 하겠냐는거다. 경연에서 떨어진 것도 다 엄마 때문인것 같다.
대학을 한학기 다니고 그만둔건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에서다. 건기는 아르바이트 두세개를 해 가며 독립해서 생활한다.
어쩌다 집에 들르면 모든게 똑같다. 형은 매번 볼때 마다 건기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고 엄마가 시켜야 "건기야 왔어요" 이런 인사를 한다. 형의 뒷바라지 외엔 시간이 없는 엄마는 피곤에 젖어있고 집안은 뒤죽박죽 엉망이다
오랜만에 들른 건기에게 엄마는 또 그 타령이다.
"엄마가 죽으면 형은 네가 책임져야한다.

내가 왜? 난 절대 안할거야 라고 쏘아 붙인 뒤에 따라오는 말은, 세상에 둘밖에 없는 형젠데 돌봐야지 란 엄마의 레파토리는 똑같다. 건기는 두사람의 안부가 궁금해 들렀지만 막상 마주하면 화만난다.
건기는 한때 자신이 형하고 바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자신이 장애가 있어서라도 엄마의 온 마음을 받고 싶은 마음.
장애아이를 가진 엄마는 온통 신경이 아이에게로만 쏠릴 수 밖에 없다. 매 순간 아이가 장애인 게 지기탓 같아 미안해서, 다른 아이와 다른게 안스러워서, 혹은 그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형제나 자매는 늘 한켠에 떨어져 있게 된다. 비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엄마는 장애아이를 돌보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 커야 한다.
쓰라린 어린 마음을 혼자 약을 발라가며 딱지가 굳어지다 보면 장애인인 형제나 자매가 조금씩 이해가 된다. 엄마의 헌신적인 몸부림이 차츰 보인다.

영화는 모짤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을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성호의 무대로 시작한다.
이 음악을 들으면 늘 그 영화가 생각난다. 사랑하지만 더이상 갈곳을 잃은 연인, 그 사랑의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죽음으로 멈춰버리는 사랑이야기 " 엘비라마디간"과 모짤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나비의 팔랑거리는 몸짓이 소리가 된다면 바로 그소리일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선지 듣고 있으면 따스한 햇빛아래 푸르게 흔들리는 들판에 담요깔고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상상을 한다. 책은 좀 슬픈 책이어야 하고 고양이도 옆에서 자고 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영화의 엘비라마디간의 잔상이 남아있는 상상인거 같다.
피아노 하면 떠오르는 추억, 두번째는 전국민 연주곡이라 할 수 있는 고양이의 춤이다.따라라 딴딴 따라라 딴딴~피아노를 곁에서 보기만 한 사람이라도 한번쯤 쳐보았을 곡. 이 곡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친구한테 배웠다. 어디서고 피아노가 보이면 똥땅 댔던 음악이다.

드림콘서트에서 피아노 협연을 하는 형을 보며 건기는 조금씩 눈이 커졌다. 모짜르트를 치는 형은 바람같기도 들판을 비추는 따스한 햇빛 같기도 했다.
그렇게 형을 싫어하던 건기가 형의 러시아행에 동행을 하게 됐다. 러시아 여행에서 건기는 여전히 형을 놀리기에 여념이 없다.
엄마와 처음 떨어져 잔뜩 움츠러든 형에게 모든걸 혼자하라는 건기는 인정사정 안봐주는 교관 같다. 음악밖에 모르는 은호는 이제 면도도 옷입기도 혼자해야 한다.
드디어 연주회날, 모스크바에 온 이유이다. 협연 초청을 받아 수많은 관객 앞에서 오케스트라와 클라리넷을 연주한 은호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앵콜을 받았다.
앵콜은 동생 건기의 피아노반주에 형의 클라리넷으로 연주했다. 두사람의 화음은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표현이 안될만큼 아름다웠다.

마치 형이 "나만 믿고 따라 와" 하듯 이끌어 주는것 같았다. 비로서 대화를 하는 느낌, 형제는 나란히 마주했다. 엄마가 그토록 형에게 만들어 주고 싶던 이름 "음악쟁이"에 닿아 있었다. 건기도 이제 엄마처럼 어쩐지 형을 온전히 사랑하게 될 수 있을거 같다.
영화에는 슬프면서 아름다운 녹턴 이 전반에 흐르면서 전개된다.
[녹턴은 녹터널에서 유래된 서양음악의 한 장르다. 밤에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뜻을 함유하므로 우리에게 야상곡으로 비유할수 있다. 녹턴은 존필드라는 작곡가가 창시했는데 여러 작곡가에 의해 변화를 해오며 쇼팽에 이르며 새로운 형식을 낳게 되었다.
쇼팽은 녹턴을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 라고 표현했다.노래하는 듯 감미롭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연주한다. 당시에는 평범하단 평가를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 곡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많은 클래식이 그렇듯 녹턴도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같은 음악을 다양한 연주자로 감상해 보는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거같다.

고단한 일상이지만 잠깐 틈을 내어 나에게 클래식 음악으로 휴식을 선사 해 주자. 음악으로 오래 엉크러져 있던 매듭들이 풀어진 그 순간을, 이제야 만나게 된 형제의 마음을 느낄수 있을지도.
영화 : 녹턴
2022년 개봉.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모스크바 영화제. 베스트 다큐멘터리상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상
감독: 정관조
출연: 은성호, 은건기
*이 다큐영화는 11년 동안 만들었다고 한다. 한 자페장애인이 놀라운 집중력으로 음악가가 되는 과정과 가족간의 오해가 이해와 수용이라는 과정을 감독의 세심한 관찰과 이해를 보여준다. 관객들에겐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잊을 수 없는 또 한편의 아름다운 다큐영화를 선사해주었다.